모두가 IMF 외환위기 보다 더 어려운 한 해 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국내 도착도 가격 기준으로 2007년 평균 250불 수준이던 사료용 옥수수 가격이 2008년 6월 425불까지 오를 줄 예상이나 한 사람이 있었을까? 2007년 평균 410불 수준이던 대두가격이 700불까지 오를 줄 그 누가 예상이나 했던가? 다행스럽게 주곡인 쌀은 자급을 유지하고 있어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톤당 평균 500불 수준으로 안정되어 왔던 켈리포니아산 중립종 쌀 가격이 1,200불 까지 뛰어오를 줄 그 누구가 상상이나 하였던가? 그러나 이 모두가 우리가 한해를 보내며 체험한 생생한 현실이다. 이제 옥수수, 대두가격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흘러간 에피소드의 하나로 돌려도 좋은가? 아니다. 이제 우리는 2008년을 보내며 우리는 식량안보에 대하여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대 경제이론에서 가장 각광을 받는 것은 <효율>이다. <안정>은 이 <효율>에 가려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가 일상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식량문제만은 <안정>이 <효율>보다 우선 되어야 함은 역사가 주는 소중한 교훈이다.

산업혁명 이후 농업 경시 풍조가 만연하던 영국은 나폴레온의 대륙 봉쇄로 곡물의 공급부족과 가격급등의 시련을 겪었다. 1814년 대륙 봉쇄령이 해제되고 풍년이 들어 곡물가격은 곤두박질 하자 1815년 농업기반 보호를 위한 곡물가격 하한제를 근간으로 하는 곡물법이 제정 되었다. 이 곡물법의 존폐를 두고 30여 년간 사회적 논쟁이 지속 되었다.

말서스를 중심으로 한 유효수요 이론가들은 곡물가격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내수 시장이 활성화되고 번영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리카도를 중심으로 한 효율주의자들은 국가간 자유무역 등으로 곡물가격이 하락해야 임금과 지대도 하락하여 산업자본 축적과 노동수요 확대로 국부가 증대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846년 곡물법이 폐지되자 주곡인 밀의 자급율은 19%로 하락하였고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 의한 식량공급 봉쇄로 또 다시 맞은 식량 위기에서 교훈을 얻은 영국은 전후 농업의 중요성을 자각하여 지금은 식량의 수출국이 되었다.

 

2006년 기준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율은 33%로 OECD 30개 회원국 중 27위이다. 품목별 자급율은 쌀 98.9%, 곡물(사료포함) 28%, 쇠고기 47.9%, 닭/돼지고기 70.6%로, 주곡인 쌀을 빼면 식량 자급율은 10% 이하로 년간 2,100만 톤, 국민1인당 500kg의 식량을 수입하고 있는 셈이다. OECD 회원국 중 자급율 50% 미만인 나라는 한국,일본, 폴투갈, 네덜란드, 아이스란드 5개국 뿐이다. 국내 한 효율 지상주의자가 말했듯이 “논 20만평에 첨단공장을 설립하면 여기서 나오는 공산품 수출로 년간 국내 소비 쌀 전량을 수입할 수 있다”고 안심하여도 좋은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단연코 안심하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식량의 공급 측면에서 보면 첫째 세계 식량수급은 항상 공급 부족이다. 65억 세계 인구가 년간 필요로 하는 곡물 량은 19억 톤 수준이나 공급은 18억 톤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2010년 이면 세계인구는 70억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둘째 빈발하는 이상 기후는 안정된 식량 생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잦아진 화산 폭발의 우산효과로 햇빛을 차단하여 한냉전선을 형성하고 대기오염은 극 지방의 기온을 상승시켜 대기의 흐름을 수시로 교란하고 있다. 동 태평양 난류가 서쪽으로 이동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엘리뇨 현상은 페루에는 홍수, 인도네시아에는 가뭄을 반복하고 있다. 이 여파로 05/06년도 2500만 톤 이던 호주의 밀 생산은 가뭄으로 06/07년도 980만 톤으로 급감했다.

 

식량의 수요 측면에서도 불안 요인은 상재하고 있다.

첫째 신흥 개발국의 소득수준 향상은 육류 소비를 증가시켜 년간 곡물 수요를 급증시키고 있다. 인구 13억인 중국의 년간 1인당 육류소비는 85년 20kg에서 2006년 50kg로 급증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1kg 생산에 각각 곡물 7kg와 3kg가 소비되는 것을 감안하면 소득 수준 향상에 따른 식량소비 패턴 변화에 따른 곡물 수요 증가는 예측 이상이며 그 결과 식량 수출국이던 중국은 수입국으로 전락하였다.

둘째 바이오 연료 공급의 확대는 곡물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고 있다. 2007년 기준 세계곡물재고의 절반인 3000민 톤의 옥수수가 바이오 연료로 전용되었고 미국은 자국 옥수수 생산의 1/3을 바이오 연료로 전용하고 있다.

 

세계 곡물의 유통조직도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 곡물 교역량의 70% 이상은 세계 5대 곡물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다.

세계 3위이던 컨티넨탈을 흡수 합병한 카길은 전 세계 곡물 교역량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ADM 16%, 프랑스 루이드레프스 12%, 아르헨티나 분게 7%, 스위스 아드레가 5%를 점유하여 강력한 독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곡물가격 유지를 위해 매년 세계 재고량 감소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둘째 최근 확대 일로에 있는 글로벌 투기자본이 곡물시장을 투기 대상의 하나로 지목하고 있는 것도 식량유통의 불안을 가속시키고 있다.

셋째 식량 수출국에 만연하고 있는 식량 자원주의는 식량 유통을 제한하고 있다. 곡물가격이 급등하자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아르헨티나 등은 곡물 수출에 관세를 부과하여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

 

‘달러만 있으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식량은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 수입할 수 있다’는 우리의 안일한 생각만 변화시켰다면 2008년 곡물파동은 전화위복이다. 언제나 반복될 수 있는 곡물파동으로부터 우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의 주식인 쌀의 자급 만은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고수하여야 한다. 통일 후 북한의 식량문제를 감안하면 더욱 쌀의 자급유지는 민족적 과제이다.

둘째 쇠고기, 돼지고기 등 주요 식량 품목의 최저 자급율을 법제화하고 이를 조기 달성하기 위한 재정 투융자를 우선해야 한다. 초지 조성을 위한 산지 전용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재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식량자원의 해외개발수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특히 사료용 곡물의 해외 개발 수입을 위한 사료회사들의 합작투자도 연구해 볼 과제이다.

넷째 그 동안 많은 경험과 자본을 축적한 국내 종합상사들의 국제 곡물시장 진입을 정책적으로 장려해야 된다. 인구 8백만 소국인 스위스가 세계 곡물 유통의 5%를 점유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

 

2008년 험난한 곡물 파동을 넘으며 ‘식량 수급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현명하게 대비’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 임을 잊지 말자.

(2009년 1월 2일 축산신문에 기고한 글 입니다)